청와대 습격 작전 중 생포귀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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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nion 댓글 0건 조회 36회 작성일 25-04-0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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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습격 작전 중 생포귀순 후 목회 활동 이어와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생포된 뒤 귀순해 목회 활동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노환으로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목사는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8세부터 군 생활을 했다. 그는 북한 정찰국 124군 소속이던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로 향했다. 이른바 '1·21 무장공비 사태'다. 청와대로 침투하던 중 서울 세검정 고개 인근에서 생포됐다. 당시 무장공비 31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생포 후 '왜 내려왔느냐'는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서울성락교회를 개척한 김기동 목사의 전도를 받아 서울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 1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이향휘 선임기자]청와대 습격 작전 중 생포귀순 후 목회 활동 이어와북한 무장공비로 우리나라에 침투했다가 생포된 뒤 귀순해 목회 활동을 했던 김신조 목사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서울성락교회 등에 따르면 김 목사는 이날 새벽 노환으로 소천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목사는 1942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18세부터 군 생활을 했다. 그는 북한 정찰국 124군 소속이던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대통령 살해를 목표로 북한산을 넘어 청와대로 향했다. 이른바 '1·21 무장공비 사태'다. 청와대로 침투하던 중 서울 세검정 고개 인근에서 생포됐다. 당시 무장공비 31명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생포 후 '왜 내려왔느냐'는 질문에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시요"라고 말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있는 서울성락교회를 개척한 김기동 목사의 전도를 받아 서울침례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1997년 1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교원예움 서서울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2일,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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