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유해 뿌려진 언덕에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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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25-05-03 20:40본문
작가의 유해 뿌려진 언덕에 산불 덮쳐 오두막 남았지만 할매들 집 22채 피해 포기하지 않는 새싹처럼 “하느님 제발…”지난 3월25일 경북 의성에서 넘어온 산불이 안동시 일직면 조탑마을로 옮겨붙었다. 고 권정생 작가의 생가 오두막(주황색 지붕)은 무사했으나 뒤편 ‘빌뱅이 언덕’은 불에 탔다. 작가가 저녁마다 올라가 노을 보길 좋아했던 언덕엔 2007년 그의 유해가 뿌려졌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바람은 여전히 세찼고 아직도 불 냄새가 났다.봄을 쫓아온 산불이 겨울을 벗고 있던 언덕을 덮쳤다. 언덕 숲에 의지해 살아가던 생명들도 불에 타거나 쫓겨났다. 재가 된 나무들이 손끝에서 부서졌고, 타고 남은 가지엔 새들도 앉지 않았다.4월15일. 불탄 언덕에서 불탄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3월25일 안동으로 건너오며 시 전역으로 번졌다. 바람에 올라탄 불덩이가 폭탄처럼 날아다니며 언덕과 마을에 떨어졌다. 마을 초입에서 보수공사 중인 5층 전탑(1963년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문화재)은 불을 면했으나 그 탑에서 이름을 얻은 조탑(造塔)마을은 60여가옥 중 22채가 전소 또는 반파됐다.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고샅길 집들은 새까만 잿더미였다. 뜨거운 불길에 지붕이 녹아내렸고 벽들은 대포에 맞은 듯 무너졌다. 타지 않고 남은 건 집의 기억뿐인 터를 보며 동화 작가 박기범은 부식되지 않는 먼 나라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참 이상했어요. 마치 20여년 전 거기, 이라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누런 흙빛들도, 무너진 형상도, 냄새도, 두려움도 얼마나 비슷하던지. 그 이상한 착시, 기시감, 울렁거림…. 불이 지난 곳들은 ‘전쟁터와 다름없는’이 아닌, 말 그대로 진짜 전쟁터였어요.”‘문제아’(1999), ‘어미개’(2003)와 ‘새끼개’(2003), ‘미친개’(2008) 등을 쓴 박기범은 미국의 침공이 시작되던 2003년 이라크로 들어가 아이들 앞을 지키는 ‘인간 방패’가 됐다. 서로를 파괴하는 세계에서 글쓰기의 무력감에 시달리던 그는 나무를 공부하는 목수가 됐다. 숭례문 복원과 석가탑 보수 현장에서 일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 보수 기술자(감리회사 대표)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 그는 ‘문제아’를 출간한 20대 후반부터 언덕 아래 사는 작가를 만나러 왔다. 그는 처음부터 작가를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작가는 36살 어린 그를 오랫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그냥 기범이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부탁한 뒤에야 작가는 “그렇게 부르는 순간 상하관계가 돼 싫다”면서도 비로소 “기작가의 유해 뿌려진 언덕에 산불 덮쳐 오두막 남았지만 할매들 집 22채 피해 포기하지 않는 새싹처럼 “하느님 제발…”지난 3월25일 경북 의성에서 넘어온 산불이 안동시 일직면 조탑마을로 옮겨붙었다. 고 권정생 작가의 생가 오두막(주황색 지붕)은 무사했으나 뒤편 ‘빌뱅이 언덕’은 불에 탔다. 작가가 저녁마다 올라가 노을 보길 좋아했던 언덕엔 2007년 그의 유해가 뿌려졌다.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바람은 여전히 세찼고 아직도 불 냄새가 났다.봄을 쫓아온 산불이 겨울을 벗고 있던 언덕을 덮쳤다. 언덕 숲에 의지해 살아가던 생명들도 불에 타거나 쫓겨났다. 재가 된 나무들이 손끝에서 부서졌고, 타고 남은 가지엔 새들도 앉지 않았다.4월15일. 불탄 언덕에서 불탄 마을이 내려다보였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3월25일 안동으로 건너오며 시 전역으로 번졌다. 바람에 올라탄 불덩이가 폭탄처럼 날아다니며 언덕과 마을에 떨어졌다. 마을 초입에서 보수공사 중인 5층 전탑(1963년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문화재)은 불을 면했으나 그 탑에서 이름을 얻은 조탑(造塔)마을은 60여가옥 중 22채가 전소 또는 반파됐다. 언덕 쪽으로 올라가는 고샅길 집들은 새까만 잿더미였다. 뜨거운 불길에 지붕이 녹아내렸고 벽들은 대포에 맞은 듯 무너졌다. 타지 않고 남은 건 집의 기억뿐인 터를 보며 동화 작가 박기범은 부식되지 않는 먼 나라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참 이상했어요. 마치 20여년 전 거기, 이라크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누런 흙빛들도, 무너진 형상도, 냄새도, 두려움도 얼마나 비슷하던지. 그 이상한 착시, 기시감, 울렁거림…. 불이 지난 곳들은 ‘전쟁터와 다름없는’이 아닌, 말 그대로 진짜 전쟁터였어요.”‘문제아’(1999), ‘어미개’(2003)와 ‘새끼개’(2003), ‘미친개’(2008) 등을 쓴 박기범은 미국의 침공이 시작되던 2003년 이라크로 들어가 아이들 앞을 지키는 ‘인간 방패’가 됐다. 서로를 파괴하는 세계에서 글쓰기의 무력감에 시달리던 그는 나무를 공부하는 목수가 됐다. 숭례문 복원과 석가탑 보수 현장에서 일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 보수 기술자(감리회사 대표)로 전국을 다니고 있다. 그는 ‘문제아’를 출간한 20대 후반부터 언덕 아래 사는 작가를 만나러 왔다. 그는 처음부터 작가를 “할아버지”라고 불렀고, 작가는 36살 어린 그를 오랫동안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그냥 기범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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